일과 생활의 경계
늦은 새벽까지 책을 읽고 잠든 탓에 정오가 가까워진 시간에 일어났다. 잠이 깨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의 알림 창을 확인하는데 보통 별다른 내용은 없다. 출판사에서 보낸 도서 홍보와 입고 문의, 스팸 메일 몇 통, 메신저도 마찬가지. 대충 살펴보는데 다시 알림이 왔다. 긴히 할 말이 있다는 P작가의 문자. 바로 답은 하지 않는다. 깨어나서 바로 일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잘 내린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 유연한 통화가 이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전화가 왔다.
아직 세수도 못했는데 거의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인즉슨, 함께 이야기한 지원사업이 선정이 되었음에도 시작도 하기 전에 다른 서점이 사업의 부담을 느끼고 포기를 했다. 다수의 작가와 서점이 한 편으로 진행하기에 한 서점이 포기하면 허무하게 끝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이런 사정으로 지원 사업을 위해 작가와 서점을 연결했던 P작가는 곤경에 처했다.
지긋한 나이에도 일의 성사를 위해 동분서주 애를 썼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포기의 이유는 단순했다. 일은 복잡하고 지원금이 적다는 것. 상황이 어려울 때는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다가 다른 굵직한 지원사업도 잇따라 선정이 되니까 귀찮은 일은 모르고 싶은 것이다.
무책임하다. 화가 날 일이지만 마음은 아무렇지 않다. 함께 편은 이뤘지만 아직 다른 서점과 작가의 일면식도 없으니 발도 떼지 못한 상황에서 듣는 무산은 큰 타격이 없기 때문일까. 물론 일정대로 진행이 된다면 달마다 들어오는 지원금이 있다. 또한 작가를 통해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으니 교류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 연결점인 P작가가 이런 상황을 혼자 감수하고 있다. 이 사업이 작가와 다른 서점에게는 어떤 의미일지는 모른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수도 있고, 절박한 상황에서 희망이 될 수도 있겠지. 그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코로나로 인해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재난지원금도 처음 몇 번을 제외하곤 모두 자격에서 제외되었다. 대형온라인 서점의 매출이 줄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네 서점은 지원 대상에 빠진 일도 있었고, 제한 업종이 아닌데다가 실제로 지난 매출에 비해 금년 매출이 조금 오른 탓에 지원금을 받지 못한 일도 있었다. 매출의 차이가 없을 정도다. 사업장과 거주지의 주소가 같다는 이유로 지급 대상에서 빠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 이와 같은 일이 벌어져도 크게 놀라지 않게 된다. 수익을 따져가며 무언가를 하는 일이 피곤하다. 그랬을 거면 서점을 하지도 않았겠지.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커피를 달여 먹고, 창에 드리워진 볕을 본다. 식물에 물을 주거나 고양이와 논다. 찾아온 손님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소소하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이렇게 생활하기 위해 책방을 하고 있다고 다시 생각한다.
이전에 P작가와 책방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지원사업에 대한 논의를 위해 직접 찾아오게 되었는데 머리가 희끗한 원로 작가여서 조금 놀랐다. 작금의 나이로 직접 지원사업을 위해 품을 팔아야 될 정도의 상황은 아닐 텐데 말이다. P작가는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했고, 협회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문인들과 서점 간의 매끄러운 지원 사업의 연결을 위해 연락을 드렸다고 말했다.
단순히 서점과 작가를 연결하는 일이지만 다수의 작가와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날짜를 조율하는 일이기에 작가나 서점의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작업을 줄여주는 소통의 역할인 셈이다. 직접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아닌데 일선의 문인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다는 것은 대단하다. 어떤 직책에 있다고 하더라도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P작가는 이 일이 틀어졌을 때 그의 선의가 오히려 해가 되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문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는데 이런 결과로 면목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포기한 서점의 대표에게 사정도 해보고 회유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면서 내게 대안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일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현실의 글쓰기란 어쩌면 이런 것일까. 책방은 글을 쓰기 위한 방편의 일이다. 그런데 책방의 일이 생활이 되었으니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책방과 글쓰기, 일과 생활의 경계에서 나는 어쩌지도 못하고 눈만 깜빡인다.
프루스트의 서재
서점생활자. 책방에서 고양이와 살고 있다. 일과 생활의 경계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는 중. |